임희조의 서툰 행복, 소소한 일상에 투영된 나다움의 발견
글_김윤섭(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 미술사 박사)
임희조 작품의 주제는 ‘서툰 행복’이다. 전시 제목도 같다. 화면에 등장한 대상들은 다소 엉뚱 발랄한 귀여움을 지녔고, 명쾌한 색상표현과 시원시원한 붓질로 묘사됐다. 아주 거침이 없는 일필휘지의 당찬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화가가 ‘시각적 촉감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임희조는 적어도 자신만의 촉감이 무엇인지 감을 잡은 듯하다. 작품들은 하나같이 무심함이 쌓여 축조된 이야기들처럼 친밀하고 편안하다. 일상에서 수집한 소소한 행복은 임희조만의 이야기 방식으로 익어간다.
“작품의 매력을 꼽으라면 ‘귀여움’이 아닐까 싶네요. 아기자기하거나 작고 사랑스러운 귀여움보다는, 다소 엉뚱 발랄한 귀여움입니다. 타고난 매력이 귀여운 느낌이랄까, 관람자에게 피식 미소 짓게 하며, 볼수록 귀엽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고슴도치 어미의 마음과 같은 생각일 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림엔 남성이 없다. 둘이거나 혼자인 여성, 고양이, 강아지, 오리, 나무, 꽃 등이 전부다. 참으로 단순하다. 약간은 미완으로 보일 정도의 심심한 그림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임 작가는 ‘나다움을 찾는 과정’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나다움’은 답이 없는 문제처럼, 평생의 화두로 삼을 만한 과제이다. 그래서 나를 찾는 여정은 현재진행형이고, 미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기에 가능성이 열려 있다. 서툴지만 차근차근 집중하면서 ‘가장 나다움이 빛났던 행복한 순간’을 찾는 것이다. 임희조 작가에게 그 시기는 ‘미소녀 시즌’이다.
보통 미소녀라고 하면 여고생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아직은 설익은 인생의 초년생이지만, 풋풋하고 순수한 감성으로 치자면 인생의 절정기이다. 꽃다운 미소녀가 바라본 인생의 빛깔은 얼마나 찬란할지 궁금하다. 온 세상에 여름엔 ‘꽃비’, 겨울엔 ‘꽃눈’이 내린다. 꿈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순간들이 가득한 그림을 바라보면 작가의 미소가 스친다. 섹슈얼리티와는 거리가 먼 비슷한 또래 해맑은 미소녀들의 지지고 볶는 이야기로 요란하다. 좀 어설프면 어때, 당당하면 그만이지~ 그림 속의 여주인공들은 두 살 터울의 친구이자 분신 같은 작가와 여동생이다. 그래서 임 작가의 그림이 더욱 진솔하고 솔직하게 다가온다.
“그리면서 담고 싶었거나 느꼈던 감정들이 관람자에게도 잘 전달될 때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작업할 때는 댄스곡 위주의 아주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간혹 덩실덩실하기도 하거든요. 작업할 때의 긍정적인 감정이나 좋은 기운이 작품에 최대한 고스란히 담기길 희망합니다.”
임희조 작가의 관심사 중에 ‘나다운 모습을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감성으로 투영하는 것’을 빼놓을 수가 없다. 자유로움은 그녀의 그림을 읽어내는 중요한 단초이다. 늘 자유롭게 상상하고 편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품세계를 꿈꾼다. 나름의 해결책으로 ‘이미지 수집의 일상화’를 실천하고 있다. 평소에 꾸준히 수집한 이미지를 종합해놓고 선별해 드로잉 작업으로 옮긴다. 간혹 인물의 포즈는 스스로 모델이 되어 사진을 찍기도 한다. 머릿속 상상에 의존하지 않고, 평범한 자세라도 직접 취해보는 것은 그림에 있어 시각적 해석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큰 목표나 지향점 보다도 개인의 작고 소소한 행복이 더 위대하다고 여긴다. 임희조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신념이다. 작품에도 아주 가까운 주변 환경에 관심사가 활짝 열려 있음이 드러난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30점이다. 두 여인이 등장하는 장면이 7점이고, 혼자 일상을 즐기는 모습이 10점, 반려동물과 함께 등장한 장면이 4점, 반려동물만 묘사한 것 역시 4점, 나무나 꽃이 주인공인 경우가 5점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 두 여인의 모습은 바로 작가와 여동생이다. 아름다운 추억만을 골라 회상하듯, 둘의 에피소드를 전하는 장면이 더없이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전해준다.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고 누리자,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아, 라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싶어요. 특정한 목표나 목적을 위해 미래를 위한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닌, 현재를 위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죠. 지금 누리고 있는 소소한 행복들에 만족하며 기꺼이 감사하고 기뻐하는 하루하루들을 담으려고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것이 더 좋거든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하루하루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하루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임 작가가 작업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 중 하나는 조형성이다. 평소 ‘회화에서 소재는 조형적 요소를 드러낼 명분’이라고도 믿기 때문이다. 임 작가는 “회화에서 설명되는 상황적 표현은 그 회화의 설명적 도구 역할로도 사용됨”을 강조한다. 형상, 구도, 색상, 조형적 요소(선ㆍ면ㆍ공간 등)를 포함한 기본을 중시하면서도 자신만의 조형성과 특성을 찾고자 무던히 노력한다. 작가로서 입지를 굳혀 가려면 자신만의 언어를 확실히 갖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쉽게 드러나는 기법 연구의 매진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건축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마감재가 아니라, 살아갈 공간의 구성이다. 임희조의 회화 역시 물감의 재질감이나 표면적인 기법보다 그가 연출하는 화면의 색조와 리듬감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그림들은 마치 편편한 색면 패널을 자유곡선으로 잘라 붙인 것처럼, 명징한 미감이 돋보인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친 붓질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작가가 어떤 리듬감과 속도감으로 붓질을 마쳤는지도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이다. 평면화된 색채 감성으로 표현한 또 다른 정중동의 미감이다.
“작가는 자유로운 존재지만,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중심을 잡고 변화해 가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아직은 여러 면에서 부족한 신진작가이기에 불안정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주변의 환경적 외부요인에 휘둘리지 않고자 노력합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연구를 쉬지 않으려고 합니다.”
임희조 작품이 보여주는 ‘서툰 행복의 미학’은 어쩌면 어설픈 채로 이미 완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진정한 묘미는 사회적 관습과 인습을 얼마나 숙련되게 익혔는가가 아니라, 잠재되었던 내 안의 나를 언제 깨울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렸다. 그 잠든 나는 본디 그대로가 완성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임희조는 ‘가장 순수했던 무념무상의 나다움을 만나는 방법’을 좇고 있다. 일상의 삶에서, 자연에서, 관계에서, 추억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스스로 나를 만나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가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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